- 제8회 숭인제1동 백일홍 축제, 5일 숭인근린공원서 열려…역사·꽃·주민이 어우러진 마을문화축제
- 유에스더·김상배 특별공연, 주민노래자랑·자치회관 공연·체험마당 이어져…유찬종 구청장 “주민이 함께 만든 축제”
늦여름 햇살 아래 붉고 분홍빛으로 피어난 배롱나무 꽃이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불러냈다. 단종과 생이별한 뒤 평생을 그리움 속에서 살았던 정순왕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망봉 자락에서 주민들이 꽃과 역사, 음악과 이웃의 정을 한데 엮은 마을축제를 열었다.
종로구 숭인제1동과 제8회 숭인제1동 백일홍 축제 추진위원회는 5일 오후 숭인근린공원 일원에서 ‘제8회 숭인제1동 백일홍 축제’를 개최했다. ‘배롱나무에 걸린 그리움을 담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축제는 단순한 꽃 구경을 넘어 숭인동이 품은 역사적 기억을 주민 문화와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백일홍 축제는 2017년 처음 시작됐다. 단종비 정순왕후의 이야기가 깃든 동망봉과 숭인근린공원을 알리고, 주민들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기억하자는 뜻에서 조성한 백일홍 둘레길을 배경으로 출발했다.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주민 공연과 노래자랑, 체험 프로그램이 더해져 창신·숭인 지역을 대표하는 주민 참여형 축제로 성장했다.
특히 백일홍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배롱나무는 한여름부터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백일 동안 붉게 핀다’는 의미를 지닌다. 숭인동에서는 이 긴 개화의 이미지가 오랜 세월 단종을 그리워했던 정순왕후의 삶과 겹쳐지면서 다른 지역의 꽃축제와 구별되는 역사적 상징성을 갖게 됐다.
주민 손으로 문 연 축제…공연과 웃음으로 달아오른 숭인근린공원
이날 행사는 오후 3시부터 하모니카 연주를 비롯해 자치회관 프로그램 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안단테앙상블의 하모니카 선율에 이어 북난타와 라인댄스, 웰빙댄스가 무대에 올랐고, 윤조가요장구의 난타공연과 웃음토크가 이어지면서 축제장은 주민들의 박수와 웃음으로 채워졌다.
오후 4시 개회식에서는 개회선언과 내빈 소개, 축사가 이어졌으며, 본행사에서는 축하공연과 주민노래자랑이 펼쳐졌다. 권순복·윤석정·백훈아 등 주민과 지역 출연자들이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닦은 노래 실력을 선보이면서 관객과 출연자의 경계가 낮아지는 ‘동네 잔치’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대의 중심에는 전문 예술인들의 공연도 배치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에스더가 축하공연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가수 김상배가 특별공연에 나서 관람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사전 홍보 단계부터 두 사람의 출연은 올해 백일홍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냅킨아트와 파우치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과 부침개, 홍어 등을 마련한 먹거리 공간이 운영됐다. 무대공연만 바라보는 행사가 아니라 아이들과 가족이 직접 체험하고, 주민들이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생활문화형 축제의 성격을 살렸다.
이 같은 방식은 백일홍 축제가 처음부터 이어온 흐름이기도 하다. 과거 축제에서도 주민노래자랑과 공연, 페이스페인팅·풍선아트 등 체험행사와 먹거리 공간을 함께 운영하며 ‘주민이 만드는 축제’에 무게를 뒀다. 제5회 행사 당시에도 지역주민 250여 명이 참여하고 주민 노래자랑과 특별공연,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됐다.
꽃보다 오래 남은 역사…정순왕후의 기다림을 오늘의 문화로
숭인동 백일홍 축제를 다른 지역의 꽃축제와 구별하는 가장 큰 요소는 동망봉에 얽힌 정순왕후의 역사다.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뒤 궁궐 밖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다. 동망봉이라는 이름에는 정순왕후가 동쪽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날 그 비극적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에 배롱나무와 산책길이 조성되고, 주민들이 그 길에서 축제를 열면서 과거의 슬픔은 현대의 공동체 문화로 다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성은 축제가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종로구는 앞선 축제에서도 정순왕후의 정절과 충절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백일홍 둘레길을 행사의 중심 공간으로 설명해 왔으며, 2024년에는 숭인근린공원 입구에 굵은 배롱나무 대표목을 추가로 심어 축제 공간의 상징성을 높였다.
백일홍 축제가 2017년 첫 행사를 시작한 뒤 8회째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주민 축제로서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종로구 주민자치 기록에는 이미 2018년 ‘제2회 숭인근린공원 백일홍 축제’ 지원이 공식 안건으로 다뤄진 사실이 확인된다.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행사가 아니라 주민자치 조직과 지역사회가 오랜 기간 축적해온 행사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민이 함께 피워낸 꽃”…백일홍처럼 이어지는 공동체
이날 행사에서 축제 관계자들이 강조한 것도 화려한 프로그램보다 ‘주민’이었다.
최명주 백일홍 축제 추진위원장은 사전 행사 소개를 통해 주민들이 함께 준비해온 축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가족과 이웃이 함께 찾아 백일홍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공연자와 체험부스 운영자, 주민노래자랑 참가자 상당수가 지역 주민이라는 점에서 그의 말처럼 올해 축제는 주민이 관람객이자 동시에 주인공이 되는 무대로 꾸며졌다.
유찬종 종로구청장 역시 8회째 이어진 백일홍 축제가 주민들의 정성과 참여 속에서 성장해왔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공연과 체험을 함께 즐기면서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축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제는 ‘하루의 행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망봉과 숭인근린공원이라는 역사 공간, 배롱나무가 지닌 상징성,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공연과 먹거리,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체험행사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백일홍 축제 자체가 숭인동이라는 지역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수많은 지역축제가 비슷한 무대와 프로그램을 반복하기 쉽지만 숭인동 백일홍 축제는 ‘정순왕후와 동망봉’이라는 이곳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계절마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오래전 한 사람의 그리움을 기억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웃들이 서로 안부를 나누는 것이 이 축제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백일홍은 화려하게 한 번 피었다가 곧 지는 꽃이 아니다. 한 송이가 지면 또 다른 꽃이 피면서 긴 시간 나무를 붉게 물들인다. 숭인동의 백일홍 축제도 닮았다. 2017년 처음 주민들이 심은 작은 축제가 해마다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더하면서 어느덧 여덟 번째 꽃을 피웠다.
5일 저녁 폐회선언과 함께 무대는 막을 내렸지만 동망봉에 남은 배롱나무 꽃과 이날 주민들이 나눈 웃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순왕후가 품었던 오랜 그리움의 공간이 오늘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축제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것이 숭인동 백일홍 축제가 단순한 꽃축제를 넘어 종로의 지역문화축제로 계속 이어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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