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부암동 인왕산 자락까지…20년 가까이 우리 민속조각의 맥을 이어온 공간
50년 넘게 목인을 모아온 김의광 관장…이름 없는 장인의 손끝에서 한국인의 삶과 해학을 읽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과 북악산의 능선이 서로 시선을 건네고, 한양도성의 오래된 시간이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곳에 조금 특별한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현대미술관도, 거대한 국립박물관도 아니다. 나무로 깎은 사람과 동물, 죽은 이를 마지막 길까지 배웅했던 작은 조각상, 무덤 앞에서 수백 년 동안 말없이 한 자리를 지켜온 돌사람들이 이곳의 주인이다.
이름하여 ‘목인박물관 목석원(木人博物館 木石苑)’.
종로의 오랜 시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박물관 가운데 하나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나무와 비바람을 견딘 돌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과 죽음, 믿음과 웃음, 그리고 이름 없는 장인들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목인박물관은 국내외 옛 민속 목조각을 수집·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해 설립됐다. 2005년 서울시 제19호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으며 2006년 3월 종로구 인사동에서 정식 개관했다. 2019년에는 부암동 인왕산 자락으로 옮겨 ‘목인박물관 목석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인사동에서 시작해 부암동으로 옮겼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박물관의 뿌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종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에서 시작한 박물관이 한양도성과 인왕산을 품은 부암동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단순한 주소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목인이 태어난 시대와 그 목인을 오늘까지 품어온 공간이 모두 ‘오래된 서울’이라는 하나의 시간 위에 포개졌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장인들이 남긴 ‘조선 사람의 얼굴’
‘목인(木人)’은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사람이다. 그러나 목인박물관에서 만나는 목인은 단순한 목각인형과는 다르다.
조선시대 상여를 장식했던 사람과 동물, 신당과 사찰에 놓였던 조각, 마을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했던 각종 민속 목조각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여에는 호랑이를 탄 사람도 있었고, 도깨비와 신선도 있었다. 광대가 물구나무를 서기도 했고, 연꽃과 용, 해태와 여러 상상 속 동물들이 망자의 마지막 길에 동행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익살스럽고 때로는 거칠다. 비례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많다. 머리는 크고 다리는 짧으며 눈은 과장돼 있다. 그러나 바로 그 파격이 목인의 아름다움이다.
김의광 관장은 오래전 언론 인터뷰에서 목인을 만든 이름 없는 목수와 장인들이 과장과 축소, 생략이라는 자유로운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을 목인의 중요한 매력으로 꼽았다. 서민들의 일상과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나무조각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목인은 미술품이면서 민속자료다.
기록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장인의 손끝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기원했으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드러난다. 옷차림을 통해 당시 복식을 읽을 수 있고, 조각의 형상을 통해 신앙과 장례문화, 생활풍습까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목인과 석인이 각 나라의 전통적 아름다움과 서민의 생활정서를 보여주며 옛 생활풍습과 토속신앙, 복식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목인박물관 목석원이 소장한 민속 목조각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근·현대에 이르는 약 1만2000점에 달한다. 상여장식용 목인을 비롯해 신당과 사찰에서 사용된 조각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야외에서는 문인석·무인석·동자석을 비롯한 여러 석조각을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지금의 목석원은 실내 전시장에 유물을 진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약 3000평 규모의 부지에 6개의 전시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왕산과 한양도성이 맞닿은 야외 공간을 따라 돌사람들이 서 있다. 문인석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먼 곳을 바라본다. 동자석의 얼굴에는 천진함이 남아 있고, 세월을 견딘 석물의 표면에는 이끼와 풍화의 흔적이 겹겹이 내려앉았다.
관람객은 간단한 음식물을 가져와 야외 공간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다. 박물관에서는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해 관람객들이 전시를 본 뒤 자연 속에서 천천히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시장과 정원이 분리되지 않는다.
돌은 나무 곁에 있고, 오래된 조각상 뒤로 실제 산이 이어진다. 그래서 목석원을 걷다 보면 박물관을 관람한다기보다 어느 오래된 조선의 정원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워진다.
2019년 부암동 재개관 당시에도 박물관은 한국과 아시아 목조각을 보여주는 실내 공간과 문인석·동자석·해태 등 수백 점의 석조각이 놓인 야외 전시장을 함께 조성했다. 무엇보다 인왕산과 한양도성, 북악산과 북한산의 자연경관을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기존 인사동 박물관과는 또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됐다.
50년 수집의 세월…김의광 관장이 지켜낸 ‘사라질 뻔한 것들’
목인박물관을 이야기하면서 김의광 관장을 빼놓기는 어렵다.
박물관에 놓인 수많은 목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수집가의 긴 세월과 만나기 때문이다.
김 관장이 우리 전통 공예품에 눈을 뜬 것은 1970년대였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인 지인의 집에서 우리나라 전통 목조 공예품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인사동과 청계천 일대 골동품상을 찾아다니며 목인을 모으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여러 지역의 목조각으로 수집 범위를 넓혔다.
당시만 해도 상여에 붙어 있던 목인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장례문화가 빠르게 바뀌면서 상여 자체가 사라졌고, 상여를 장식하던 목인 또한 버려지거나 흩어지기 쉬웠다. 김 관장은 바로 그런 것들을 찾아다녔다.
팔지 않겠다는 사람을 여러 번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2006년 김 관장을 소개하면서 그가 30년에 걸쳐 전국을 다니며 목인과 목조각을 수집했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조선시대 상여문화와 전통 의식문화를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수집가의 마음은 결국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오랜 세월 모은 것을 개인의 방 안에 두기보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 김 관장의 생각이었다. 그는 2008년 인터뷰에서도 애써 모은 목인을 혼자 보는 것이 아까워 박물관을 세웠다고 밝혔다.
박물관이 한 개인의 수집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는 가족의 힘도 컸다.
김 관장은 “2015년 아내 서혜숙 씨의 도움으로 목인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박물관이 앞으로도 계속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개인의 수집이 재단이라는 공적인 틀을 갖추면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김 관장의 관심은 목인에서 석인과 민속생활자료로 넓어졌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의 수집과 기증은 계속되고 있다.
2026년에는 10여 년 동안 모은 황해도 해주항아리 232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는 당시 수백 점의 해주항아리를 보내며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에 비유했다. 이 유물들은 같은 해 국립민속박물관의 북한 민속문화 관련 전시에서도 소개됐다.
수집은 ‘소유’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수집의 마지막은 ‘보존’과 ‘공유’일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김의광 관장이 걸어온 길은 한 개인의 취미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도 크게 주목하지 않던 목인 하나를 집어 들었던 일이 수십 년 뒤 수천·수만 점의 민속자료를 지키는 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시작해 종로를 지키는 박물관
목인박물관의 역사는 곧 종로와 함께한 역사다.
2006년 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 곳은 인사동이었다. 조선시대부터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근현대에는 고미술상과 화랑, 표구점과 골동품점이 들어서며 서울 전통문화의 중심으로 자리한 곳이다.
김 관장이 젊은 시절 목인을 찾아 골동품점을 돌아다니던 곳 역시 인사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동은 목인을 ‘수집한 거리’이면서 훗날 목인을 세상에 내놓은 ‘박물관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2019년 박물관은 같은 종로 안에서도 더욱 깊숙한 역사 공간인 부암동으로 옮겨왔다.
김 관장 자신도 종로와 인연을 더욱 깊게 맺었다. 오랫동안 강남에 거주했던 그는 10여 년 전 종로구로 이사해 아예 종로구민이 됐다. 박물관을 종로에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활 터전까지 종로로 옮긴 것이다.
현재 박물관이 자리한 부암동 일대와의 인연 역시 우연에서 시작됐다.
김 관장은 북악산 쪽에서 ‘산모퉁이’ 카페를 운영해왔다. 당초 박물관 부지를 찾던 중 해당 부지를 매입해 수장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카페를 운영하게 됐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박물관 운영에 보태고 있다.
김 관장은 이를 두고 “박물관 부지를 찾아 매입해 수장고로 쓰던 곳이 우연히 드라마에 나오면서 카페를 하게 됐다”며 “카페 수익을 다시 박물관에 넣고 있으니 하늘이 도와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개인이 평생 수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애정만으로 계속하기 어렵다. 전시장과 수장고를 유지하고, 유물을 보존하며, 관람객에게 공간을 열어두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운영 기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산모퉁이 카페와 목인박물관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버팀목이 됐다.
창의문을 지나면 북악산과 인왕산이 서로 마주하고, 가까운 곳에는 한양도성이 이어진다. 왕조의 수도 한양을 둘러싸던 성곽과 산 아래에 조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담은 목인과 석인이 다시 자리 잡은 셈이다.
그래서 목석원의 입지는 우연처럼 보이면서도 절묘하다.
나무와 돌로 만든 옛사람들은 콘크리트 도심 한가운데보다 산과 성곽을 배경으로 할 때 오히려 본래의 표정을 되찾는다.
비가 내린 날에는 돌의 빛이 깊어진다. 햇살 좋은 날에는 오래된 석인의 이마에 그림자가 생긴다. 겨울에는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문인석의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박물관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 전시된 돌과 산의 바위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목석원이 가진 품격이다.
유물을 새것처럼 단장해 시간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대신, 오히려 세월 속에 놓아둔다.
나무에는 칼자국이 남아 있고 돌에는 풍화가 남아 있다. 목인의 얼굴은 반듯하지 않으며, 동자석의 미소도 현대 조각처럼 세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투박함 속에 오래된 한국인의 얼굴이 있다.
왕이나 대신의 초상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 가까이 보여주는 얼굴이다.
목인박물관은 그래서 과거를 크게 외치는 박물관이라기보다 과거가 스스로 말하도록 기다리는 박물관에 가깝다.
관람객에게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게 전시장을 훑고 지나가기보다 작은 목인의 표정을 하나씩 바라보고, 상여 장식에 왜 호랑이와 도깨비가 등장했는지를 생각하고, 야외 석물 앞에서 세월이 만든 돌의 표정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이 박물관의 진가가 드러난다.
전시를 둘러본 뒤 준비해온 간단한 음식을 펼쳐 놓고 차 한 잔과 함께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을 바라보는 시간도 목석원 관람의 일부다. 문화유산을 유리 진열장 안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일상의 공간에서 천천히 마주하도록 한 것이 이 박물관만의 특징이다.
종로에는 경복궁도 있고 창덕궁도 있으며 종묘와 한양도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궁궐에만 남지 않는다.
한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장례행렬에도, 이름 없는 목수가 깎은 작은 나무 인형에도, 어느 무덤 앞을 오랫동안 지켰던 동자석에도 역사는 남아 있다.
그 작은 역사를 모으고 지키는 곳이 목인박물관 목석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남들이 지나쳤던 나무 조각 하나, 돌사람 하나를 바라봐 온 김의광 관장이 있다. 그 곁에는 박물관이 개인의 수집으로 끝나지 않도록 목인문화재단 설립을 함께한 가족이 있고, 우연히 드라마 촬영지가 된 공간을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재원으로 다시 돌려놓은 특별한 인연도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다시 부암동의 산자락이 보인다.
수백 년을 견뎌온 돌사람들은 여전히 말이 없다. 목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그 길을 배웅했던 이야기. 웃음과 슬픔을 나무에 새기고 돌에 남겼던 이름 없는 조상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종로의 목인박물관은 단순히 ‘옛 물건을 모아놓은 곳’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사라져가던 한국인의 오래된 표정을 한자리로 불러 모아 놓은 곳.
인사동에서 시작해 부암동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수집에서 문화재단으로, 수장고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박물관으로 성장하면서도 종로를 떠나지 않은 공간.
그것이 50년 넘는 수집의 세월을 품고 오늘도 전통의 시간을 지켜가고 있는 ‘목인박물관 목석원’의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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